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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P: 한국의 국민 워드프로세서, 앞으로도 계속될까?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프로그램이지만, 한국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프로그램. 바로 HWP 입니다. 프로그램의 공식 명칭은 ‘ᄒᆞᆫ글’ 이라고 밖에 쓸 수가 없네요. ‘한’ 의 ‘ㅏ’ 대신에 옛한글에 있는 아래 아, 즉 ‘ᆞ’를 쓰는데, 이 모음의 발음은 현대 사람들은 할 줄도 모릅니다. 개발사에서는 공식적으로 ‘아래아 한글’이라고 불러달라고 했지만 이게 너무 길다보니 보통 ‘아래한글’이라는 (사실 말도 안되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쓸때는 ‘한/글’이라고 쓰기도 하고요.

HWP의 진짜 한국어 이름: 정확한 발음은 무엇일까?

개발사는 영문 이름도 이랬다 저랬다 했어요. ‘Hangul and Computer Hangul’ 이었다가 ‘Haansoft Hangul’ 라고도 했다가 ‘Hancom Office Hanword’ 였다가 ‘Hancom Office Hwp’ 를 거쳐 지금은 그냥 ‘HWP’라고 부르고 있죠.

HWP 는 이 프로그램으로 만든 파일의 확장자이기도 합니다. 그냥 ‘Hangul Word Processor’ 를 줄인 말이죠. 파일의 확장자를 의미하기도 하지마나 보통 그러는 것처럼 여기서는 프로그램도 그냥 ‘HWP’ 라고 부르겠습니다.

워드프로세서 세계 시장과 한국의 특수성

글로벌 워드프로세서 시장은 오랫동안 마이크로소프트(MS) 워드가 지배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클라우드 기반의 구글 워크스페이스(Google Workspace)가 무섭게 성장하며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죠. 전체 오피스 시장으로 보면 지금은 구글이 더 큰 것으로 보이네요. ElectroIQ 의 조사에 따르면 2024년에 Google 이 44%, MS 가 30%라고 합니다.

2024년 오피스 시장 점유율

물론 한국에서도 MS 오피스나 구글 워크스페이스를 많이 사용합니다. 특히 엑셀이나 구글 시트 같은 스프레드시트 기능 없이 업무를 하기 어려운 회사가 아주 많죠. 그러니까 MS 오피스에 딸려 온 MS 워드가 있는데도 많은 사람이 HWP 를 필요로 할까요? 특히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에 문서를 제출할 때 말이죠. 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HWP는 왜 필요했을까? 90년대 한글 처리의 숙제

90년대에는 MS 워드로 한글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는 한글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유니코드 2.0 이 발표된 것이 1996년인데요, 표준이 만들어지고 나서 실제 소프트웨어에 적용되는데는 몇년 더 걸렸기 때문에 2000년대 이전까지는 계속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90년대까지 주로 쓰이던 ‘완성형’ 한글의 한계라고 보통 여겨집니다. 완성형과 조합형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완성형: 한 글자를 한개의 코드로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이라는 글자는 한개의 코드(유니코드에서는 U+ADEC)로 표시됩니다.
  • 조합형: 한글의 초성, 중성, 종성을 분할하며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죽 이라는 글자는 + + 를 표현하는 각 코드를 합쳐서 표현하게 됩니다.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조합형이 한글의 원리에 잘 맞고 효율적이라는걸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대신 한글을 위한 전용 프로그램이 필요하고, 그 전용 프로그램을 전 세계에 적용해야 어디서든 한글을 읽고 쓸 수 있겠죠.

90년대 당시의 완성형은 저장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2,350자의 한글만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라든가 이라든가 이런 글자는 쓸 수 없었죠(그 당시 쓸 수 없던 글자나 단어들의 예시는 나무위키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 사실 2,350자로 의사소통하는데 당장 큰 불편을 있었다기보다는, 외국 기술로는 한국어와 한글을 표현하는데 부족함이 있다는 인식이 꾸준히 있게 되었죠.

HWP의 역사: 국가적 자존심?

HWP를 개발하고 공급하는 회사는 '한글과컴퓨터(Hancom, 이하 한컴)'입니다. 1989년 서울대학교 컴퓨터 연구회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한글 1.0 을 발표했고, 1990년 10월에 한컴을 설립했습니다. 회사 이름부터 한글에 대한 전문성을 강조하려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회사의 창립자이자 당시 대표적인 여배우 김희애 씨와 결혼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이찬진 씨는 회사를 오랫동안 키우려는 의지가 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MS의 한컴 인수 시도 사건

1998년 6월, 한컴이 경영 악화로 HWP를 MS에 매각하겠다고 발표하여 많은 사람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당시 판매 금액은 2천만 달러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MS는 HWP 개발을 중지해야 한다는, 지금 보면 당연한 조건을 걸었고, 사람들은 이것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급기야 벤처기업협회는 한컴의 매각이 1조 원이 넘는 국부 손실이라며, HWP 살리기 운동에 돌입합니다. 100억 원을 모금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목표의 10분의 1도 이루기 어려웠다고 하죠. 그래서 결국 메디슨의 창업자인 이민화 씨가 50억 원을 투자하게 됩니다[출처].

1년여가 지난 후 뉴욕타임스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고 하네요.

한국인들이 국가의 기술자산으로 여기는 한컴의 자본이 50배 증가했다. MS에 맞서 이렇게 싸우는 것은 전 세계를 통틀어 처음이다.

애국심 마케팅과 계속된 대주주 변경

한컴은 1998년 대놓고 민족적 감성을 자극하는 이름인 ‘8·15 특별판’을 출시해 70만개를 판매하는 등 애국심에 호소하는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특별판의 가격은 단돈 만원이었던 대신 1년만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이 붙어 있었죠. 문제는 이 시기에는 매년 돈을 내고 소프트웨어를 구독한다는 개념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1년 제한을 애써 알리지도 않았고, 특별히 기술적인 제한이 걸린 것도 아니어서 계속 쓰는 사람이 많았습니다[출처].

1999년 5월 보도 — 보따리 내놔라

지난해 7월 국민적 운동으로까지 번졌던 한글과 컴퓨터사 살리기 운동에 동참했던 사람들이 자칫하면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자로 몰릴 형편에 놓여 있습니다. … 이처럼 불만의 목소리가 거세지자 한글과 컴퓨터사는 오늘 이용기간의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뒤늦게 공식 발표했습니다.

경영은 계속 어려웠습니다. 삼성이 자체 개발했던 ‘훈민정음’도 나름의 경쟁력이 있었지만 결국 사업을 포기했던 것처럼, 한국어 워드프로세서 개발이 수익성을 갖기는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한컴은 2003년 프라임 그룹에 다시 인수되고 2009년에는 TG삼보에 팔리는 등 2010년까지만 주인이 8번 바뀌었습니다[출처].

정부 지원의 명암

경영이 불안정한 HWP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지원 덕분이라는 인식이 많습니다. 정부는 KS 규격으로 HWP를 표준으로 지정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 처럼 취급합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져서 에지간한 지방자치단체의 보도자료도 PDF 로 같이 제공하지만, 시민들의 눈치를 덜 보는 분야, 즉 정부 지원 과제를 따내기 위해 지원서를 제출하다면? 대부분의 경우 HWP로 된 서식을 다운받아 작성해서 업로드해야한다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부의 지원은 한컴의 생존에는 분명 도움이 되었겠지만 국민의 정보 접근성 차원에서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특히 HWP의 파일 형식이 폐쇄적인 면이 많이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HWP의 파일 형식: 조금씩 오픈되어가고 있음

HWP 형식은 2010년에서야 공개되었습니다. 공개 문서는 조금 보기가 어렵고, 한글과컴퓨터의 HWP 포맷 구조 살펴보기 라는 페이지가 비교적 이해하기 쉽습니다.

HWP 포맷은 바이너리 형식으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개발한 CFB(Compound File Binary File Format, 이하 CFB)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포맷은 여러 데이터 스트림을 단일 파일 안에 저장하기 위한 방식으로 FAT(File Allocation Table)와 유사합니다. 간단히 말해 파일 내부에 폴더 구조가 포함된 포맷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CFB 파일임을 표시하는 Signature(Magic Number) 는 D0 CF 11 E0 A1 B1 1A E1 입니다.

일반적인 HWP파일의 시작 부분

실제 HWP 문서임을 표시하는 Header 는 다음과 같이 더 나중에 나옵니다. 이 값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먼저 CFB 구조를 파싱(Parsing)해야 합니다. 이 Signature 뒤에는 문서 버전, 압축 여부, 암호 여부 등의 중요한 정보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HWP 문서의 헤더 Signature

기타 상세한 내용이 설명되어 있긴 하지만 파일을 읽고 쓰기에 충분한 정도는 아닙니다.

HWPX 의 등장

HWP의 폐쇄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지속적으로 있었고, 2017년 정부는 국제 표준 오픈소스 형식인 ODT(Open Document Text)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이는 공문서 원문을 ODT로 보관한다는 의미이고 모든 작업을 ODT로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애초에 사기업에 종속된 문서 형식으로만 공적 기록을 모두 보관한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습니다)[출처].

어쨌든 한컴도 여러 방향으로 압박을 느꼈기 때문인지 HWPX 라는 새로운 규격을 2021년부터 기본 형식으로 변경했습니다. HWPX는 OWPML — 개방형 워드프로세서 마크업 언어(Open Word-Processor Markup Language)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문서의 구조와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HWPX로의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래된 버전의 HWP 프로그램이 열지 못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거부감이 있는 것이로 생각됩니다.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HWP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급격히 시장에서 사라질 가능성은 낮습니다. 대기업에서 MS 오피스나 구글 워크스페이스 사용이 보편화되고 있지만, 공공기관과의 업무나 특정 분야에서는 여전히 HWP가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표 편집 기능이나 숙련자에게 익숙한 단축키 등 HWP만의 장점을 선호하는 사용자층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HWPX와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워드프로세서간의 호환성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가끔씩 HWP를 쓰는 사람들의 불편함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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